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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필리핀 한인경제인총연합회 회장] |
오늘날 중산층의 삶이 위기에 놓이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중산층이 두터운 ‘다이아몬드형 사회’에서 중산층이 엷어진 ‘모래시계형 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중산층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기는 하나 유독 한국사회에서는 그 속도가 빠르다. 최근에는 집값 폭등과 교육비 지출 증가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스스로를 빈곤층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중위소득의 50~150%에 속하는 중산층의 비중은 1990년 74.47%에서 2000년 70.87%로, 다시 2010년 67.33%로 지속적으로 감소돼 왔다. 주목할 것은 주관적인 중산층 귀속의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8월 국민 가운데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6.4%에 불과했다. 이는 중위소득의 50~150%를 중산층으로 보는 OECD 기준을 적용한 수치다.
또한 소득계층 간 이동률을 보면, 계층 이동 없이 저소득층에만 머물고 있는 비중은 2008~2009년 전체 계층의 18.4%에서 2011~2012년 20.3%로 늘어났다. 특히 비정규직의 급속한 증가는 우리 사회의 소득불균형을 보여주는 주요한 지표가 된다.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비정규직 근로자는 748만 1천명으로 임금근로자 중 36.4% 차지한다.
모든 통계수치는 소득 격차가 역대 최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해인 2019년 8월 22일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의 지니계수는 30.64로 2018년에 이어 30선을 유지하며 IMF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지니계수는 1995년 2분기까지 25~27 사이에 머물다가 IMF 외환위기 다음해 30선을 넘어 1999년 30.83을 찍는다. 2000년 들어 다시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함께 다시 29.87로 오른다. 지니계수는 이후 다시 회복세를 보여 2015년 26.93으로 IMF 직전 수준까지 떨어진다. 다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 2018년 다시 30선을 깨고 30.69를 찍는다. 2019년 30.64로 0.05% 떨어져 소폭 개선됐지만 2분기 기준으로 30선을 넘은 것 자체가 IMF 이후 처음이다. 여기서는 지니계수의 값에 100을 곱한 값이다.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란 국민들의 빈부격차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 이탈리아의 통계학자인 코라도 지니(Corrado Gini)가 1912년 만들어냈다. 지수는 0~1 사이로 나오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평등한 소득분배를 의미하고 숫자가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니계수는 평상시 소득 상황으로 집계를 내야하기 때문에 소득의 편차가 클 수 있는 분기나 월 단위로 계산하지 않고 1년 주기로 작성한다.
다음으로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을 살펴본다. 통계청이 2019년 8월 22일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에 따르면 2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전국, 2인 이상)은 5.30배로 집계됐다. 200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2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다. ‘소득 5분위 배율’이란 5분위계층(최상위 20%)의 평균소득을 1분위계층(최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지니계수와 함께 국민소득의 분배 상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적 빈곤율’의 실상이다. 2018년 12월 20일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2018년 ‘상대적 빈곤율’은 17.4%이다. 상대적 빈곤율은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이 중위 소득의 50% 이하에 속하는 인구를 전체 인구로 나눈 값이다. 2018년에 중위 소득 50% 이하를 가르는 기준인 빈곤선은 1천322만원이다. 전체 인구의 17.4%가 연간 1천322만원 이하의 처분가능소득으로 생활한 셈이다.
OECD 36개 회원국 중 한국은 지니계수가 28위, 소득5분위배율은 29위, 상대적 빈곤율은 31위를 기록하는 등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10월 현재 중산층은 국민의 66%, 97년 74.1%와 비교하면 8% 이상 하락했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근로소득 증가가 소득 불평등 완화로 이어졌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오히려 근로소득이 늘어날 때 소득불평등도 악화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분석 결과 근로소득 불평등도는 금융위기 이전보다 이후에 더 악화했다. 이는 비정규직의 증가 등 근로소득자 간 임금 격차의 확대를 의미한다. 더욱이 지난 우파 정권은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겠다.’는 ‘줄풀세’는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중산층을 몰락시켰다.
이렇듯, 국내외 경제 상황이 계속하여 악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부채 상환을 위한 지출, 통신비, 교육 관련 지출 비중의 합은 가계 지출 부담이 18%에서 43%로 급증했다. 이러한 지출은 좀처럼 줄이기 쉽지 않은 경직성 비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최고였던 우리나라의 저축률은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1%에 비해 고작 5분의 2 수준인 2.8%로 떨어졌다.
하지만 중산층 붕괴를 정부의 정책부재 탓으로 만 돌려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 확산도 중산층 붕괴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중산층 붕괴의 또 다른 근본적 원인 중의 하나는 전 세계적인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대한민국이 정보화와 지식기반 사회로 급속히 편입됐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리 사회가 정보와 지식의 격차에 따라 소득수준이 결정되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중산층은 경제의 성장 동력이자 사회 공동체의 든든한 받침대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어느 나라도 버텨낼 수 없다. 경제를 지탱하는 중산층의 몰락은 국가 붕괴로 이어진다. 앞으로도 이 같은 추세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 분명하다. 중산층이 줄어들면 계층 간 갈등이 심해지고 내수기반이 약화돼, 소비가 위축되고 그로 인해 기업 매출과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 등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은 이미 검증됐다. 전문가들은 우리 시대의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득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사라진 중산층은 부유층보다는 빈곤층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직의 고통이 중산층과 하위 계층에 더 가혹하게 다가오는 것은 물론 이들의 소득 구조에서 자산 소득보다 근로 소득의 비중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었거나 감봉 등으로 소득이 크게 줄어든 중하위층이 빠른 속도로 하위 계층에 유입될 공산이 크다.
OECD는 “탄탄한 중산층은 경제·정치적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의 필수동력”이라면서 중산층 복원에 대한 전방위적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단 기업 활력을 높여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 중산층 기반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 침체된 내수가 살고 국가도 살아나는 것이다.
또한 소득에 따른 담세의 형평성을 높이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중산층 보호대책이자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다.
특정 시점의 불평등이 심화됐다 하더라도 소득지위가 낮은 개인에게 소득지위가 높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문제는 덜 심각하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세대 또는 자녀 세대에서도 소득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면 이에 따른 상실감은 계층간 위화감을 키우고 사회통합을 저해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기업과 가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누적된 불균형 문제도 해결해야 되지만, 1인 가구의 증가,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 등 새로운 변화가 소득과 재원분배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